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자코모 카사노바 (문단 편집) == 총평 == 진지한 카사노비스트는 카사노바를 결코 '''도덕적으로 옹호하지 않는다.''' 다만 보기 드물게 화려한 삶을 살아간 인물로서 그를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할 뿐이다. 이를 넘어 카사노바의 도덕적 측면을 들여다본다면 남는 것은 그저 사기꾼과 성범죄자의 모습일 뿐이다. 카사노바에 대한 재평가 시도도 '전근대의 윤리관에 따라 타락한 난봉꾼이라는 이미지에 갇혀있던 카사노바를 현대인의 관점에서 새롭게 해석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사실 현대의 기준으로 재해석하면 오히려 평가가 뚝뚝 떨어지는 인간이다. 노동을 경멸하는 귀족주의자였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그리 나쁘지 않게 받아들여진 면모지만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청담사상|'백수 주제에 직장인을 우습게 보는' 행태가 될 것이고]], 곳곳에서 쳐댄 사기도 그때에야 어느 정도 모험담 비슷하게 받아들여졌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그저 범죄다. 그리고 지금까지 저지른 납치, 강간, 성매매 및 성매매 알선,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는 현대 기준으로 종신형감이고 국가에 따라서는 사형감이 될 수도 있다. 다만, 이 인간이 살던 시대에는 성적 자기 결정권은 명문화 되지 않았고, 여성, 미성년자에 대한 법도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은 시대였는데 근세의 엄숙한 종교적인 질서가 지배한 16-17세기와 사회적 신분을 안 가리고 국민 국가라는 걸 만들기 위해 공교육을 통해 사회 전반적으로 성적 가치관을 주입한 19세기 사이에 딱 알맞게 떨어진, '''이전 시대의 종교적 엄숙주의에 대한 문화적 반발이 존재하는데 이를 하층민에게까지도 하나의 성적 가치관을 주입하지는 않았던 18세기 중후반'''[* 물론 카사노바가 한창 살던 시기에는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같은 여러 독일계 나라들에서 의무교육이 정착된 상태였지만, 초등교육 위주였고, 중등교육까지 의무화되지는 않았다.]의 인물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당대에는 사기꾼이라 욕해도 성적 방종은 법적으로는 덜 문제시된 것이다. 물론 이 때문에 형을 살다나오기도 했고, 여러 국가에서 계속 쫓겨나거나 러시아나 영국에선 완전히 박대 당하긴 했다. 딱 100년만 더 일찍, 혹은 늦게 태어났으면 종교재판소의 잿더미로 산화하거나 사회 불안 요소라고 낙인 찍힌 채 정신병원을 가장한 감옥에서 평생 썩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나쁜 의미에서 당시의 시대와 잘 맞은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사람'''으로 볼 수 있다. 그나마 주 활동 무대이던 프랑스, 독일, 러시아 등에서는 외국인이라서 처벌을 피해갔지 같은 시대에 비슷한 사상을 갖고 행동한 [[사드 후작]]은 프랑스 정부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되는 처벌을 받았다. 카사노바가 이탈리아에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러시아, 체코 등등 온 유럽을 떠돌아다닌 이유가 이것이다. 한 나라에서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맞아죽거나 감옥에 갈 지경이 되면 다른 나라로 튀어버린 것. 그러니 한번 갔던 나라는 다시 못 돌아가고 그러다보니 온 유럽을 떠돌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당시 유럽의 신분제 사회에서 지식인 계층 출신이긴 하지만 신사나 귀족 계층이라고 보기는 조금 모자란, 일종의 하층 시민계급 출신이었던 카사노바의 입장에서는 자기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 다른 나라로 가야 귀족이나 신사계급을 사칭하기 편했던 것도 있다. 애초에 카사노바의 유일한 투옥 경험이 베네치아에서 있었던 것 자체가 카사노바의 고향이 베네치아 공화국이었던 탓에 여러 번 문제를 일으키고도 선뜻 얼른 도망가겠다는 결정을 하지 못했고, 주변과 인간관계마저도 복잡하게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탈옥하여 국외로 탈출한 뒤에는 두 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물론 카사노바가 탁월한 재능을 갖춘 영리한 인물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카사노바는 자신의 재능을 좋은 쪽으로는 하나도 쓰지 않고 강간, 사기, 노예 매매 등 범죄 행위에 악용했다. 실제로 어지간한 사람이 카사노바처럼 살면 맞아죽든지 굶어죽는다. 카사노바의 자서전이 아직까지도 널리 읽히는 이유는 이것이 단지 한 바람둥이 제비족의 엽색 행각을 넘어 저자의 통찰력을 통해 당대의 사회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적인 작가들이 사회의 어리석음과 모순을 드러내어 비판함으로써 극복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긴 데 비해 카사노바는 이를 악용하여 자신의 쾌락과 이익을 추구함으로써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 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